“내 살다 별소리를 다 듣겠다. 이 동네 강에서 산더미 같은 파도가 사람을 덮치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 갇혀봐야 정신을 차리겠군. 이 안에서 꼼짝하지 말고 이렇게 500번 써라. ‘다시는 강에서 파도가 덮쳤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옷을 적시지도 않겠습니다.’ 한 번만 더 거짓말을 하고 지각을 했다간 이 회초리로 때려 줄 테다, 알겠냐?”
- <지각대장 존>에서



존 버닝햄이 지은 어린이 그림책 ‘지각대장 존’은 학교 교육이 아이들의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사유와 상상력을 거세하고 국가 철학과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는 현장으로 그 결과 국가권력에 의해 의도되고 기획되어진 획일화된 인간을 양산하고 있는 암울한 교육 현실을 여실히 고발하고 있는 책이다.

그림책 속의 교사는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검은 모자와 옷을 입고 있다. (마치 중세의 재판관처럼, 오늘날의 사법부를 생각해보라.)

교사는 국가 권력을 위임받은 즉 학교(학교는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다.)라는 교육의 현장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미시권력이다.

교사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명령어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삶에 명령과 질서를 부과한다. 그는 아이들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지시함으로써 ‘신체적 변환’을 야기한다. 그러므로 그 교사에게 아이들의(그림책 속의 아이는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항상 정식 이름인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 이다.

저자는 국가 공문서에 기록되는 형식의 이름을 그대로 길게 사용함으로써 아이가 비로소 국가에 등록된 ‘국민’임을 드러낸다.) 자유로운 상상력은 용납될 수 없다. 왜냐면 그것은 국가라는 선험적·절대적 권력의 기획과 요구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난 매우 불온하고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아이에게 지각을 해서는 안 되며 (국가는 개인의 시간마저 통제한다. 즉 국가는 국민에게 계획된 시간을 할당하고 지급한다.) 악어, 사자, 파도 등 아이의 즐거운 상상력의 놀이 또한 죄악시되고 파렴치한 거짓이 된다.

아이는 수백 번의 반성문(이것은 사상의 전향서 와도 같다)을 쓰도록 강요당하게 되는데 이는 거듭된 국가적 가치의 강제적 주입을 통해 자신의 행위와 상상력에 죄의식을 불러일으켜 도덕적 반성(근거 없는)을 유발하게 하며 결국 국가에 순치되는 의식의 조작을 감행한다. 그리하여 ‘국민’ 즉 황국신민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테면 강아지도 어릴 때부터 길들여야 말을 잘 듣게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국민이 되기 시작한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에게 드러나는 생의 실체는 꿈과 자유의 동력을 상실한 겨울바다와 같은 회색의 세계이다. 잘 순치되고 부드럽게 길들여진 국민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그림책의 마지막에 교사의 시험에 들게 되지만 “이 동네 천장에 커다란 털북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선생님.” 이라고 모범답안을 제출하며 훌륭하게(?) 시험에 통과하게 된다. 그리하여 국민에 입적(入籍)하는 첫발을 떼게 되는 것이다.

이 그림책의 저자 존 버닝햄은 ‘지각대장 존’을 통해 밝은 자유와 다채로운 빛깔의 상상력과 창조적인 사유로 자신의 세계를 가꾸고 아름답게 꽃피워가야 할 아이들이(공중의 새와 물속의 물고기들에게는 길이 없다. 그들은 자유로운 비상과 유영으로 길을 창조한다.) 학교교육(이것은 어쩌면 아이들에게 무참한 폭력이다!)에 의해 국가의 욕망을 실현하는 종속적 주체인 국민으로 영토화 해 가는 과정을 짧은 글과 그림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다록(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