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의 부재가 부른 비극,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에서 출발한 소설
‘희극’을 지상에서 영원히 분실해 버린 비극적인 현장에 대한 기록
‘희극’을 지상에서 영원히 분실해 버린 비극적인 현장에 대한 기록
화순저널입력 : 2021. 02. 15(월) 12:31
소설 <장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서 출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6장(천병희 역 문예출판사)에서 “육절 운율에 의한 모방과 희극에 관해서는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라며 언급하는데, '육절 운율에 의한 모방 즉 서사시에 관해서는 23 ·24 ·26장에서 거론하고 있으나 희극에 관해서는 어디에도 논술하는 바가 없다.' 이에 움베르토 에코는 현존 하지 않는 ‘시학 2권’ 혹은 ‘희극’의 행방을 향해 상상력을 동원 한다.
<장미의 이름>은 1327년 11월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의 7일 동안에 걸친 수사를 다룬다. <장미의 이름>의 줄거리는 살인사건의 추적의 과정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즉 ‘희극’을 지상에서 영원히 분실해 버린 비극적인 현장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장미의 이름>의 두 주요 인물인 호르헤 수도사와 윌리엄 수도사는 각기 중세와 근대를 체현한다. 장님이자 노회한 수도사인 호르헤는 근엄 경건 절대적 숭배와 같은 중세적 에토스에 수구적이고 맹목적(그는 장님이다!)으로 집착한다. 그는 웃음을 “육체를 뒤흔들고 얼굴의 형상을 일그러뜨리게 함으로써 인간을 잔나비로 격하시키는 것 일 뿐”이며 “거룩한 곳을 소란케 하는 희롱과 잡담과 웃음은 어느 곳에서든 금하며 이러한 언사에 제자들이 입을 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며 경원시하고 위험시 한다.
윌리엄 수도사는 로저 베이컨(Roger Bacon 약 1212-1292 이후)의 제자이다. 로저 베이컨은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수도사로 당대에 경이적 박사(驚異的 博士 Doter Mirabilis)로 일컬어질 정도로 백과사전적인 인물이었다. “수학은 과학의 문이자 열쇠이다”는 신념으로 수학과 실험과학 연구에 일생을 몰입했다. 근대의 자연과학 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다고 알려졌다. F. 코플스톤은 그의 <철학사> 2권에서 17세기의 프란시스 베이컨과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는 인물로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로저 베이컨의 제자인 윌리엄 수도사는 과학적 추론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수사하고 해결해 가는 매우 이성적인 인물이다. 웃음에 대해서도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며 “사람의 기분을 바꾸어 주고, 육체에 낀 안개를 걷어 줍니다. 우울증의 특효약이라고 하면 어떨까요?”라며 긍정한다.
대척점에 선 두 인물은 ‘웃음’을 가운데 두고 논쟁하고 대결하지만, 그것은 곧 시대 전환의 갈등이며 철학·신학적으로는 ‘보편이 앞선다’(universalis ante res)는 실재론과 ‘보편이 뒤따른다’(universalis post res)는 유명론 간의 대립인 ‘보편논쟁’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주제는 진리 혹은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장미의 이름>마지막 부분에서 윌리엄 수도사는 제자 아드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호르헤 영감의 얼굴 말이다. …그의 얼굴에서 나는 처음으로 가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잘 들어 두어라.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호르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책을 두려워 한 것은, 이 책이 능히 모든 진리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우리를 망령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 줄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해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윌리엄 수도사는 이어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면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고기를 잡으면 버리게 되는 그물, 높은데 이르면 버리게 되는 사다리 같은 것…”
이 대목은 장자의 득어망전(得魚忘筌)과 사유경의 뗏목 그리고 자신의 언어비판을 세계인식의 사다리로 선언했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쉬타인을 잠시 소환한다.
작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2016)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기호학자 이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이다. 소설<장미의 이름>은 철학 종교 역사 기호학을 두루 아우르는 작가의 박학다식이 고스란히 녹아 스며들어 고전과도 같은 무게감과 추리소설의 재미를 동시에 제공한다. 세계 40여개 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2000만 부가 넘게 팔렸으며 메디치 상, 스토레가 상 등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다 .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자유기고가/김다록
<장미의 이름>은 1327년 11월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의 7일 동안에 걸친 수사를 다룬다. <장미의 이름>의 줄거리는 살인사건의 추적의 과정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즉 ‘희극’을 지상에서 영원히 분실해 버린 비극적인 현장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장미의 이름>의 두 주요 인물인 호르헤 수도사와 윌리엄 수도사는 각기 중세와 근대를 체현한다. 장님이자 노회한 수도사인 호르헤는 근엄 경건 절대적 숭배와 같은 중세적 에토스에 수구적이고 맹목적(그는 장님이다!)으로 집착한다. 그는 웃음을 “육체를 뒤흔들고 얼굴의 형상을 일그러뜨리게 함으로써 인간을 잔나비로 격하시키는 것 일 뿐”이며 “거룩한 곳을 소란케 하는 희롱과 잡담과 웃음은 어느 곳에서든 금하며 이러한 언사에 제자들이 입을 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며 경원시하고 위험시 한다.
윌리엄 수도사는 로저 베이컨(Roger Bacon 약 1212-1292 이후)의 제자이다. 로저 베이컨은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수도사로 당대에 경이적 박사(驚異的 博士 Doter Mirabilis)로 일컬어질 정도로 백과사전적인 인물이었다. “수학은 과학의 문이자 열쇠이다”는 신념으로 수학과 실험과학 연구에 일생을 몰입했다. 근대의 자연과학 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다고 알려졌다. F. 코플스톤은 그의 <철학사> 2권에서 17세기의 프란시스 베이컨과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는 인물로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로저 베이컨의 제자인 윌리엄 수도사는 과학적 추론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수사하고 해결해 가는 매우 이성적인 인물이다. 웃음에 대해서도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며 “사람의 기분을 바꾸어 주고, 육체에 낀 안개를 걷어 줍니다. 우울증의 특효약이라고 하면 어떨까요?”라며 긍정한다.
대척점에 선 두 인물은 ‘웃음’을 가운데 두고 논쟁하고 대결하지만, 그것은 곧 시대 전환의 갈등이며 철학·신학적으로는 ‘보편이 앞선다’(universalis ante res)는 실재론과 ‘보편이 뒤따른다’(universalis post res)는 유명론 간의 대립인 ‘보편논쟁’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주제는 진리 혹은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장미의 이름>마지막 부분에서 윌리엄 수도사는 제자 아드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호르헤 영감의 얼굴 말이다. …그의 얼굴에서 나는 처음으로 가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잘 들어 두어라.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호르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책을 두려워 한 것은, 이 책이 능히 모든 진리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우리를 망령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 줄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해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윌리엄 수도사는 이어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면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고기를 잡으면 버리게 되는 그물, 높은데 이르면 버리게 되는 사다리 같은 것…”
이 대목은 장자의 득어망전(得魚忘筌)과 사유경의 뗏목 그리고 자신의 언어비판을 세계인식의 사다리로 선언했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쉬타인을 잠시 소환한다.
작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2016)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기호학자 이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이다. 소설<장미의 이름>은 철학 종교 역사 기호학을 두루 아우르는 작가의 박학다식이 고스란히 녹아 스며들어 고전과도 같은 무게감과 추리소설의 재미를 동시에 제공한다. 세계 40여개 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2000만 부가 넘게 팔렸으며 메디치 상, 스토레가 상 등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다 .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자유기고가/김다록
화순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