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사는 동안 사람들이 가장 빈번히 보는 사물은 무엇일까? 사람일까 아니면 자동차일까? 아마도 사람이나 자동차 못지않게 흔히 목격하는 것은 나무가 아닐까? 마당에서는 정원수를, 거리에서는 가로수를 그리고 눈을 들어 산을 보면 산의 거죽을 검푸르게 색칠하고 있는 나무의 무리들 즉 숲을 볼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마주하면 그의 이름을 묻고 자동차를 보면 차종이나 가격을 묻는다. 그런데 일상을 노닐다가 나무를 보면서 이름을 묻고 그것에 특별한 관심과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오늘 삶이 몹시 분주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공에 맺힌 나무를 그저 나무라는 일반명사로 혹은 무의미한 물성(物性)의 피사체로 스쳐 지나치고 있지 않을까?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이하 나무사전)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나무에 대한 관심과 의미를 환기한다. 단순히 나무의 생태나 약초 혹은 목재와 같은 실용적 소재로서 즉 생물학적 분석이나 토목학과 약초학의 대상으로 나무를 소개하는 여느 책과는 달리, 도구적인 상상력을 배제하고 나무의 신화적인 생명력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빚어진 ‘역사와 문화’라는 인문학의 관점에서, 사람의 숨결과 무늬와 흔적이 배인 나무의 모습을 복원한다.

나무는 실용적으로 사람의 생활과 밀접하면서도 정서를 고양하며 문학과 그림은 물론 음악 등 예술에도 가장 빈번하고 다양하게 등장하는 소재이다. 노래를 보더라도 이른바 ‘애국가’의 ‘남산위의 저 소나무’를 비롯하여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말을 메는 나그네’가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의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와 ‘바람’나기도 하는 등 1896년부터 1990년까지 대중가요 총 1145곡 가운데 나무가 언급된 노래는 117곡에 달한다고 하며 판소리 여섯마당에도 37종의 나무가 총 176회에 걸쳐 등장한다고 한다.

<나무사전>은 217가지 나무를 소개한다. 학명에 실린 뜻과 강조점을 설명하고 옛 사람들의 글과 현대문학에 비친 나무와 그림 등을 소개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흔히 플라타너스라고 알고 있는 나무는 학명이 플라타너스(platanus)인데 그리스말로 ‘잎이 넓다’는 뜻이며 잎을 강조한 말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남쪽의 경우 나무껍질이 버짐과 닮아 ‘버즘나무’로 부르고 북쪽은 열매가 방울처럼 생겨 ‘방울나무’로 부른다고 소개한다. 그와 함께 김현승의 시 ‘플라타너스’를 감상할 기회도 제공한다.

우리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나무는 소나무이다. 소나무는 원래는 솔나무인데 자음 ㄹ탈락현상으로 소나무가 되었다. ‘솔’의 뜻은 ‘으뜸’이다. 이 으뜸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는 학명 피누스(Pinus)는 캘트어로 ‘산’을 의미하고 덴시플로라(Densiflora)는 ‘빽빽하게 돋아나는 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소나무는 지절(志節)의 상징이자 의연한 기상의 표상으로 숱한 그림과 문학의 소재가 되어왔고 불교의 게송(偈頌)에도 등장한다. <나무사전>은 옛사람들의 정신을 담은 여러 그림과 함께 보우국사의 ‘증대송’(贈對松)과 이황의 ‘설야송뢰(雪夜松籟)를 들려주며 소나무에 관한 유익한 얘기를 다채롭게 풀어준다.

뽕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다. ‘실크로드’라는 말에서 보듯이 중국의 역사와 함께한다. 비단은 단순히 옷이 아니라 화폐이기도 했다고 전한다. 옛날 중국은 백성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뽕나무를 심도록 강제하는 균전제를 실시하여 비단 생산을 널리 독려했다. <나무사전>의 지은이에 따르면 중국을 의미하는 China의 어원은 진나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비단(Cin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한 뽕나무가 무성한 뽕밭은 중국<시경(詩經)> 「국풍·용풍」 ‘상중’의 “새삼을 캐러 매고을로 갔었네. 누구를 생각하고 갔던고? 어여쁜 강씨네 맏딸이지…”하는 노랫말에서 보듯이 남녀가 밀회하는 ‘상중지희’(桑中之喜)의 풍경이 자욱히 피어나는 에로틱한 공간이기도 했다. 학명 알바(alba)는 흰색을 뜻하고 모루스(Morus)는 검은색을 뜻하는 캘트어 모르(mor)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디가 흰색에서 붉은 색을 거쳐 검은 색으로 익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사전>은 나무들의 사진과 옛 그림이 큼지막하게 다양하게 실리고 많은 나무를 언급하다 보니 조금 두툼해 졌다. 그러나 <나무사전>은 우리에게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나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환기하고 나무를 보는 색다른 관점과 재미와 지식을 망설임없이 제공하는 풍요로운 샘같은 책이 아닌가 싶다.

<나무사전>이 오동나무를 얘기하며 들려주는 시 한편. 오동나무를 소재로 몇 편의 시를 발표했던 이윤학 시인의 「오동나무」이다.

그의 빈속으로 들기 위하여
나는 그 나무를 자를 수는 없었다
깊은 생각으로 불면의 나뭇잎을
흔들었는데, 쥐어뜯었는데 달빛이 한 바가지
쏟아져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피어오르고 있었다, 먹고 싶은 생각이
멀리멀리 떠나고
고요하여라, 바닥에 떨어진 부채
입을 모으며 부서지는 추억,
벌레는
벌레는, 저렇게 높은 곳에서 무얼 하나?

<김다록 자유기고가>